<김선아의 시네마 아이 (Cinema-Eye) No.11>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 신성과 권위의 요새를 넘어 인간 존엄의 거리로
"HABEMUS PAPAM!" 라틴어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라는 뜻이다.
교황 선출 직후, 시스티나 성당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 후, 공식 발표자가 바티칸의 발코니에서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세계시민들과 전세계에서 모인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HABEMUS PAPAM!"
2025년 5월 8일,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프레보스트가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레오 14세. 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다. 그가 선택한 이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사회 정의와 노동 문제에 몰두했던 레오 13세(Leo XIII)는 1878년부터 1903년까지 재임한 가톨릭 제256대 교황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신성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하며 급진적 사회주의도 비판했지만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극렬히 반대하여 "국가가 약자를 위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레오 13세는 19세기 말의 산업사회에 맞춰 교회가 세상을 맞이할 ‘도덕적 나침반’을 제시한 인물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인간 존엄에 눈을 돌린 첫 교황이었다.
교황 레오 14세가 그의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프레보스트는 페루에서 수십 년간 선교활동을 했고, 이민자·빈민·토착 공동체와 함께 살아왔다. 가톨릭 보수층이 불편해할 만큼, 그는 종종 교회의 벽을 무너뜨리는 언어를 써왔다. 교회는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그의 답은 늘 '가장 약한 자들'이었다.
오늘 하얀연기가 피어오른 순간, 새로운 시대가 기대가 되는 건 분명하다. 난민을 ‘통계’가 아니라 ‘얼굴’로 보는 시선, 소수자에 대한 비난 대신 존재의 자리를 허락하는 교회, 자본주의로 인한 기후위기 극복을 강력히 촉구하는 단호함, 전쟁에서 ‘양측 모두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불균형을 직시하는 용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에서도, 그는 아마 교황청 특유의 중립 뒤에 숨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쪽이 누구인지 직시할 것이다. 가해와 피해를 뒤섞어버리는 가증스런 '평화'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급진적인 진보진영에서는 그의 여러 행보에 보수와 진보의 중립에 서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가중되는 보수와 진보갈등의 (이 갈등을 교황청의 두 명의 교황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영화 '두 교황'이다.) 화합의 상징으로 본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모든 희망과 염려,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서 작은 희망을 가진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HABEMUS PAPAM'>라는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띠의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인 멜빌 추기경(배우 '미셸 피콜리' 분). 그는 겸손하고 조용한 인물로, 누구보다 ‘교황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얀 연기와 함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Habemus Papam)"는 선언이 발표되고, 전 세계가 환호한다. 하지만 그 순간, 멜빌은 발코니에 나서지 못한다. 무대 뒤에서 그는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면서 패닉에 빠져 끝없이 크게 비명을 지른다.
바티칸은 급히 정신분석가(감독인 난니 모레티 본인이 직접 연기를 한다.)를 초빙해 멜빌의 상태를 진단하려하지만, 그는 은밀히 바티칸을 빠져나가 로마 시내로 일종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 섞이며,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교황이 실종되었음을 숨긴 바티칸 내부는 “갇힌 성직자들의 코미디”로 변모한다. 교황청 내의 문지기를 교황으로 둔갑시켜 바깥을 향해 커튼을 흔들고 커튼 사이로 삐쪽 눈을 내밀며 마치 교황이 바티칸에 있는 것처럼 연기하게 한다. 콘클라베에 참여한 추기경들은 달아난 교황으로부터 교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교황을 기다리며, 배구를 하고 수다를 떨고 경쟁심과 허세로 서로를 경계하며 뒷담화를 해대고 게걸스레 화려한 밥을 먹으면서도, 마치 내부에는 어떤 깊은 이유가 있어 교황은 깊이 숙고하고 있고 그로인해 자신들은 마치 성스럽게 갇혀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난니모레띠 감독이 영화적으로 풍자한 고결한 성직자들의 모습이다.
멜빌은 마침내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기대와는 다른 선언을 한다. "교황직을 사양한다."고. 자신은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카메라는 군중의 환호와 숭배가 얼어붙고 추기경들과 바티칸의 고위직들이 경악하는 얼굴을 포착하며 끝이 난다.
우리에게도 새 교황이 왔다. 신의 이름 아래,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언어로, 행위로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자리. 그 자리는 화려하고 권위 넘치며 성스러운 자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을만큼 무거운 자리이기에 더욱 신성하다. 레오 14세가 그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어디로 나아갈지는 아직 모른다. 하얗게 연기 피어오른 역사적인 순간, 나는 질문을 던진다.
교회란 무엇인가? 세계는 오늘 한 사람을 선택하여 교황으로 불렀다. "HABEMUS PAPAM!" 그 이면에는 그도 세상의 인간으로서 고통받고 시름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께 축복을, 또 고통으로 존재해야하는 세상의 수많은 어떤 각자의 사람들에게도 그로 인해 자그마한 한줌의 빛이라도 내려지길....
VIVA PAP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