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의 시네마 아이 (Cinema-Eye) No.12> <포스 마쥬어> :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흔드는 놀라운 영화적 경험
일정이 없는 날엔 하루에 8편까지 영화를 본다. 싱크대에서 컵을 씻으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욕실에서 침대 위까지 휴대폰 미러링으로 영화를 끌고 다닌다. 낮에도 선명한 화질을 보려고 혼자 안마의자를 밀어내다 오른쪽 손목 인대를 다쳐 반깁스를 차기도 했지만, 움막 상영관이 주는 몰입감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을과 동떨어진 이곳에서 사운드를 키우고 영화에 탐닉하는 시간은 나에게 압력솥의 증기를 빼내는 해방의 과정이다.
영화를 분석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에게 웬만한 작품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건 일종의 이중 형벌이다. 루벤 외스틀룬드(Ruben Östlund)의 <포스 마쥬어>는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타격하는 드문 경험을 선사했다. 그는 <더 스퀘어>와 <슬픔의 삼각형>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며 역대 9명뿐인 2회 수상자 명단에 가장 최근 이름을 올린 거장이지만, 내게는 두 수상작보다 이 초기작이 보여준 서늘한 통찰이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알프스로 휴가를 떠난 중산층 가족이 식사하던 중 인공 눈사태가 예상보다 거세게 몰려온다. 그 찰나의 공포 앞에서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휴대폰까지 챙기며 다급히 도망친다. 비극은 눈사태가 식당 바로 앞에서 멈춘 뒤, 안개가 걷힌 자리에 남겨진 민낯에서 시작된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짧은 도주를 기점으로 가부장제의 도덕적 허위와 중산층의 안온한 자존감을 정교하게 해체한다. 인간 밑바닥에 숨겨진 초라한 본성과 생존 본능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관객이 외면하고 싶었던 스스로의 위선과 대면하게 만든다. 장엄한 알프스의 미장센과 대비되는 인간의 유약한 내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서늘한 잔상을 남긴다. 단순한 서사로 인간의 혼을 흔드는 힘은 그가 왜 동시대 가장 날카로운 풍자가인지를 증명한다.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흔드는 매우 드문 아트하우스 필름. 움막의 고요 속에서 마주한 이 서늘한 해부는 내게 가장 완벽한 해방의 순간을 선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