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의 시네마 아이 (Cinema-Eye) No.15> <네이키드 런치>: 불쾌라는 이름의 지독한 존재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1991년 작,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는 기괴한 스토리를 따라가며 관객의 망막 위에 끈적한 점액질의 환각을 직접 주사한다. 아내를 실수로 죽인 살인자이자 작가인 주인공 빌 리가 인터존이라는 지옥으로 도망쳐 자신의 뇌를 타자기에 집어넣고 돌리는 과정은 생의 비릿한 속살을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다.
감독은 바디 호러(Body Horror)의 미학을 유려하게 보여준다. 벌레의 이빨을 자판처럼 두드리고 주인공이 멋진 문장을 쳐낼 때마다 타자기가 쾌락에 젖어 신음을 내뱉는 광경은 창작의 고결함을 비웃는 잔혹한 조형미를 선사한다. 타자기 벌레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선혈을 뿜어내는 아수라장은 기괴한 연출의 정점이다. 찢긴 살점 속에서 문장이 잉태되는 광경은 창작 이면에 도사린 파괴적 본능을 드러낸다.
피터 웨러가 연기한 빌 리의 모습은 그 자체로 파멸의 형상이다. 크로넨버그의 주인공답게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딱딱한 무표정과 초점 없는 눈빛은 인물을 하나의 유기체적 기계처럼 보이게 만든다. 살충제에 중독되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판을 누르고 발작적인 기침을 내뱉으며 오염된 세계에 투항하는 무너진 육체는 존재의 비참함을 선연하게 드러낸다. 인물들의 표정과 말투조차 생동감을 잃은 채 일그러져 있어 모든 장면은 깨어날 수 없는 거대한 악몽으로 다가온다.
오염된 살충제를 뒤집어쓴 것처럼 눅눅하고 기분 나쁜 감각은 화면 밖으로 전이된다. 직접 만져질 듯 생생한 괴물들의 형상과 인물들의 기이한 태도는 살며 마주하는 지독한 순간들을 가감 없이 비춘다. 말린 지네가 기괴한 약재로 팔리고 정체불명의 액체가 화면을 채우는 뒤틀린 감각은, 비극적인 현실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더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는 인간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다.
한 남자가 살인자에서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타자기라는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는 과정을 그린 선혈 낭자한 집필록은 오네트 콜먼의 날 선 재즈 선율 속에서 증폭되는 기괴한 미학과 어우러져 비극을 예술로 세탁하려는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필사적인 몸부림을 목격하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은 아름다운 풍경의 평화로운 공기가 아니라 내면에서 꿈틀대는 끈적한 점액질의 괴물들을 똑똑히 응시해야만 하는 지독하고 비릿한 싸움이다. 평온한 일상의 가죽을 벗겨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불쾌한 진실이야말로 결코 한가하게 눈 감고 있을 수 없는 삶의 진짜 얼굴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