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의 시네마 아이 (Cinema-Eye) No.19> -발코니의 여자들: 응시를 돌려준 해방의 공간
마르세유.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지중해의 관문인 이곳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도시로 뜨거운 햇살 아래 파리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른다. 여름이면 에어컨 없는 집들 사이로 더위가 들끓고, 파리와는 전혀 다른 공기를 내뿜으며 바닷바람조차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무더위와 가사노동에 지친 데니스가 발코니에서 기절한다. 이를 본 남편은 "또 영화 찍고 자빠졌네"라며 조롱하고 발로 차며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이미 정신을 차린 데니스는 조용히 집안일을 하는 척 움직이다 삽으로 남편의 머리를 기다렸다느듯이 내리친다. 발코니에 쓰러진 그의 얼굴을 자신의 육중한 엉덩이로 눌러 질식시켜 마치 펠라치오를 강요당하던 여성이 그 행위를 되갚듯,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원초적 복수를 해치운다. 유머처럼 연출된 첫 장면에 억압된 분노가 응축된다.
마주 선 골목의 수많은 바다색 발코니에는 여성들의 속옷이 부끄럼 없이 갖가지 색으로 펄럭인다. 어디선가는 낯선 이의 휘파람이 울리고 어딘가엔 무심한 남자들의 무딘 시선이 있다. 이 발코니는 단지 휴식의 장소처럼 보이지만, 곧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인지 드러난다. 웃기고 불편하며 때로는 끔찍하여, 끝내는 스피아민트 잎을 씹은 듯 시원한 찰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원한 흡입구가 된다.
히치콕의 <이창>이 창밖을 보는 남자의 욕망으로 세계를 구성했다면, 노에미 에클랑 감독의 <발코니의 여자들>은 창밖에서 여자가 시선을 밀쳐내고 응시를 자신의 손에 쥐어 내동댕이치는 이야기다. 영화는 유해한 남성의 역사를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이 공간 속에서 견뎌온 폭력을 기묘한 유머와 전복으로 재구성한다.
<델마와 루이스>의 여성들이 도로 위로 도망쳐 자유를 획득했듯, 이 영화 역시 발코니를 넘어선 순간, 폭력에 대한 반격과 함께 서사가 급격히 해방된다. 탁 트인 공간에서 여자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여성들이 음식으로 연대했다면, 이들은 생산적인 요리 대신 화를 내고 감정을 토한다. 수다를 떠는 대신 세상에 고함을 치고 폭발하듯 올라오는 감정을 전시하듯 내동댕이친다.
변방 마르세유에서 여자들은 세상의 주인이 된 듯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노에미 에클랑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보여준 정제된 밀도를 넘어, 생생한 육체성과 과감한 탈주를 선보인다. 셀린 시아망이 공동 각본과 제작으로 참여하며 이 여성 서사는 현대적으로 갱신된다.
발코니 너머 유명 사진작가 남성이 발코니를 통해 여자들을 초대하며 서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첫번째 여자: 소설가 니콜은 발코니 너머의 그를 짝사랑하며 환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을 '비누 회사 영업사원'이라 소개하며 존재를 축소한다. 친구들인 캠걸 루비나 배우 엘리스에 비해 외모가 떨어진다는 내부의 소리가 투영된 농담이다.
두번째 여자: 배우 엘리스는 촬영 중 마릴린 먼로 분장을 한 채 도망쳐 친구 집으로 온다. 그녀의 모든 색채는 선홍빛이다. 이는 여성성과 생명력의 상징인 동시에, 낙태와 살해라는 생과 사의 경계를 물들이는 감정의 언어다. 남편에게 반복적으로 강간당하고 피임을 묵살당해 임신했던 그녀는 남편 몰래 낙태를 선택한다. 발코니 남자의 집에서 가발을 벗어내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솔직해진다.
세번째 여자: 루비는 캠걸로서 남성적 욕망을 역이용한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윤리적 규칙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발코니 남자는 그녀의 직업을 빌미로 성적 행위를 강요하지만, 거부한 루비에 의해 난간에서 밀쳐진다. 남성은 자신이 여성들을 농락해온 촬영 장비에 몸이 관통되어 고깃덩어리처럼 우스꽝스러운 종말을 맞이한다. 이 장면에는 <데스 프루프>의 삽입곡 'Down in Mexico'가 흐르며 유혹과 응징이 엉킨 리듬을 극대화한다.
사고 이후 여성들은 죄의식 없이 시체를 여행 트렁크에 나눠 담아 바다로 향한다. 이는 해방의 질주에 가깝다. 엘리스는 쫓아온 남편에게 "너와 나눈 섹스는 다 연기였다!"고 선언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연기하던 자신을 벗어던진다. 니콜은 홀로 남자의 시체에 잘린 성기를 꿰매주며 비로소 환상을 정리한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랐던 그 '시선'이었음을 깨닫는 마지막 의식이다.
바다 위, 시체를 던지는 순간 옆 배에서도 다른 여성들이 자루를 던진다. 말없이 미소 짓는 그들 사이로 은밀한 연대가 확산된다. 견디기를 멈추기. 이어 해변에서 옷을 벗고 행진하는 여성들의 몸은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레퀴엠의 테마는 폭력과 쾌감, 상실과 종말을 집약한다. <발코니의 여자들>은 응시의 위치 자체를 전복시키는 영화사적 순간이다. 이제 여자는 응시당하지 않는다. 세계를 응시한다. 연기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그 시선을 밀어버리고 끝내 소멸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