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의 시네마 아이 (Cinema-Eye) No.1> <안녕, 용문객잔> : 소멸해가는 공간에 바치는 느리고 애잔한 작별 인사
<안녕, 용문객잔> : 소멸해가는 공간에 바치는 느리고 애잔한 작별 인사
안녕, 용문객잔(Goodbye, Dragon Inn, 2003)은 공간에 바치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진혼곡이다.
폐관을 앞둔 타이베이의 복성극장을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의 흔적이 배어나온다. 영화는 절제된 대사와 정적인 롱테이크를 통해 고독과 소외를 바라보며, 특유의 느린 호흡으로 공간의 물리적 궤적을 기록한다.
복성극장은 비가 새어 축축하고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화면에는 스크린의 뒷면, 먼지 쌓인 영사실과 텅 빈 복도, 화장실이 비쳐진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영사 기사가 응시하거나 퍼내는 모습은 노후된 공간의 천연한 몰락을 드러내며, 쏟아지는 비를 막을 길 없는 극장의 처지는 소멸을 앞둔 영화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다리를 저는 매표소 여직원이 영사 기사에게 줄 찐빵을 들고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는 고립된 공기가 담겨 있다. 텅 빈 극장을 울리는 빗소리 사이로 여자의 불편한 발소리가 리듬처럼 섞인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빗물을 닦아내는 여자의 움직임과 발소리는 공간의 정적 속에서 선명하게 들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어떤 공간에서도 쉽게 좁혀지지 않으며, 이들의 관계는 습기 가득한 공간의 분위기처럼 무겁게 흐른다.
스크린에서는 무협 영화의 고전인 1967년작 용문객잔이 상영되고 있다. 객석에는 실제 그 무협 영화의 주연 배우였던 석준과 백응이 앉아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과거 화려한 검술로 강호를 호령하던 영웅들이 이제는 주름진 얼굴로 텅 빈 극장을 지키는 모습은 애잔함을 더한다. 그들이 응시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육체가 쇠락하듯 한 시대의 정점이었던 무협과 영화라는 매체 또한 끝을 향하고 있다는 확인이다.
이 공간에는 또 다른 이들이 떠돈다. 어두운 복도와 화장실, 객석 사이를 배회하며 짝을 찾아 헤매는 남성들의 시선은 집요하다. 낡은 극장 특유의 공기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탐색하지만, 그 움직임 역시 뱌경처럼 정적에 머문다. 극장은 영화 관람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만남의 장소이자 일탈의 도피처였음을.
어린 시절 극장을 다녔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관람으로 그치기 어렵다.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와 영사기 소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환기시킨다. 매표소 여자가 텅 빈 극장을 청소하며 빗물을 닦아내는 노동의 시간조차 곧 사라질 풍경이라는 안타까움에 순간 목이 메인다.
불이 꺼진 영사실과 주인 없는 매표소, 빗줄기가 들이치는 입구까지 영화는 소멸해가는 것들을 붙잡는다. 차갑고 어두운 공간 안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머물어, 누군가를 위해 찐빵을 데우고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음들은 비록 닿지 못했을지라도 그 자리에 존재코자 한다.
두 남녀는 마주하지 못한다. 극장이 문을 닫는 날, 영사 기사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를 찾아 헤매지만, 다리를 저는 여자는 이미 그와 엇갈려 반대편 길을 걸어간다. 서로를 향한 시선이 있었음에도 물리적인 엇갈림을 극복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모습은 한 시대가 떠나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지겠지만 어둠 속에서 함께 숨 쉬었던 기억은 남는다. 상영이 끝나고 극장의 문이 닫힐 때, 흩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 위로 쏟아지는 어두운 정적은 축축한 비극을 남긴다.
한편 이토록 고요한 마지막을 스크린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다시는 가 닿을 수 없는 그 시절의 모든 눈동자 들에게 '안녕!' 작별 인사를 건넨다.
